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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2019)

ㅁ 수년만에 다시 쓰는 블로그. 어색하긴 한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시 하기로 하고... 그간 본 영화들이 아예 없던건 아닌데 이건 좀 남겨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끄적이기 시작함.

ㅁ 트위터에 적었던 글들은 개봉일에 거의 바로 적은거다보니까 스포일러 때문에 살작 억제했는데, 며칠 지나다보니까 다시금 언급해야할 것들이 있는것 같아서 좀 길게 남겨보고 싶어졌다.


사실 이 포스터는 구라입니다.
이거 나올줄 알았음.


ㅁ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있지는 않았다. 원체 히어로물에 대한 관심도 없었거니와, 최근 영화판에서 벌어지는 '비즈니스' 에 대해서는 약간 불만같은게 있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냥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었음.

ㅁ 이 영화는 굳이 dc의 그 '조커'를 빌려오지 않아도 되었을 그런 영화다. '아서' 혹은 '아서 플렉' 정도의 제목이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ㅁ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철저하게 상업영화의 문법이 아닌 '예술' 영화로 흘러간다. '조커' 라는 어떤 상징을 가지고와서 예술을 한거지.

ㅁ 이게 그래서 여러가지 측면에서의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가장 큰건 dc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 아무리도 그것위에 토대를 쌓은것이니까.

ㅁ 결국 그래서 조커는 '가정학대를 통해 뇌가 다친 장애우' 라는 해괴망칙한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dc가 이 설정을 채용하건 채용하지 않건, 조커는 '모든것을 다 꿰뚫고 바라보는 비상한 천재' 에서 '정신병을 가진 찐따' 로 격하되어버렸다. dc팬(좀 더 지엽적으로는 조커 팬)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상당히 맘에 안들어하는 모양새다.

ㅁ 이야기 자체는 흔히 볼 수 있는 약자가 어떻게 악인화 되어가는가- 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를 호아킨 피닉스가 정말 대단하게 살려냈다. 그 웃음 하나에 '슬픔' '분노' '우울' '당혹' 그리고 '기쁨' 이것이 한데 어우러지는 그 웃음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것.

ㅁ 감상직후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도 다시금 느끼는 지점은, 제작자가 던지는 주제의식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지점이다.

ㅁ 영화의 모든 감정은 티비쇼에서의 총성으로 터진다. 사실 그 앞에도 몇번의 포인트가 있었지만, 꾹꾹 억누르다 결국 마지막과 마지막에 모든것을 포기한 듯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가치있기를" 첫 자살시도에서 실패 후 눈에 들어온 글귀. 그 순간 어쩌면 아서라는 자아는 사망했고, 조커로서의 자아만 남아버렸을지도 모른다.

ㅁ 사실 이야기적 측면이나 어떠한 카타르시스적 측면에서 봤을 때 경찰차 위에 올라가서 즐기는 장면에서 끝을맺었어야 했겠지만 결국 정신병동(혹은 치료감호소?)에 수감된 조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너희가 아무리 조커처럼 되려고 한들 결국엔 병원신세다' 라는 어떠한 암시를 주어 소위 말하는 '모방범' 에 대한 제약을 건 모양새인걸까?



ㅁ 이러한 이야기적 측면이나, dc의 '조커'라는 상징을 다 제끼고라도, 연기와 연출은 정말로 출중하고, 베니스에서 상을 받을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특히나 개봉 이후 나오는 해석이나 감상들을 볼 때 모두 다 다른 이야기들,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을 보면 많은 이야기를 담고있는 수작임에 분명하다.

5/5

by tanato | 2019/10/06 00:18 | 영화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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