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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크롤러(The Sky Crawlers) (2008)

오시이 마모루(押井守)감독의 신작. 사실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를 본적은 없다. 그렇기에 이전이전 것 비교하는 것은 제외함. 그리고 네타에 관해서 자비심이 없으니까 읽고 네타를 당했느니 어쨌느니 하지 마시길


명품 애니 스카이 크롤러.

다른 분들 말마따나 이 애니는 지극히 명품 애니이다. 작화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섬세하다. 작화는 미묘한 움직임까지 재현을 하고 있고,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화면에 나오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소리로서 전달을 한다.

예를 들어 화면은 벽난로를 잡고있는데, 오른쪽에 문이 있어서(화면에는 안보이지만) 그곳으로 누군가가 나가거나 들어오는 듯한 문소리를 낸다거나.(실제도 소리도 오른쪽에서만 나고) 후반부 신에서, 총을 쏘고 탄피 소리가 뒤쪽에서만 난다거나. 이러한 현장감을 잘 살려두었다. 마치 현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Hineo님이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이러한 영화적 특성 때문이다.
야외상영장이라는 장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유는 실내에서 봤을 경우에는 ‘아. 이게 영화에서 나는 소리구나’ 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받아들이는데, 야외상영장에서는, 옆이나 뒤에서 미묘하게 소리가 나는데. ‘이게 영화소리인가 아니면 잡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실제로 부산극장에서 재감상을 했을 때, ‘어? 이소리 영화 소리였구나.’ 싶었던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야외상영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그것 때문이다.(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위의 소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이 ‘스카이 크롤러’ 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적인 느낌이 아닌 실사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난다. 오시이 감독이 실사를 주로 써온 각본가에게 “실사 쓰듯이 써도 괜찮음” 이라고 주문했을 정도고, 작화나 연출면에 있어서도 실사와 같아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위에서 말한 사운드도 그 중 하나이다.


좋게말하면 담론, 나쁘게 말하면 떡밥

짧게 한마디 하자면 이 애니에는 전쟁과 평화.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져 있으며, 극중 곳곳에는 여러가지 해석을 남기는 떡밥이 존재 한다. 이 떡밥을 다 찾아서 이야기 하기에는 기억하고있는 떡밥도 부족하며 능력도 부족하니 이렇게 사족으로 끝내두도록 하겠다.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극의 마지막에 유이치가 출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다른곳을 지나갈 수 있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경치는 매일 같은건 아니야
그것만으론 부족한걸까?
그것뿐이니까 부족한걸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매일 반복 되더라도 매일 똑 같은 일상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조그마하게 변하는 일상이라도 소중한 것 아닐까? 라는 것이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스카이 크롤러의 외부 첫 공개도 요코하마 대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전투장면에서의 대화가 모두 ‘영어’ 라는 점이었다. 땅 위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비행 중에는 영어를 쓰고… 또한, 킬드런들이 아닌 외부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쓴다. 이것을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즉,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들간의 세대 차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고, 서로간에 말이 통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어른들이 자주 하는말 ‘애들이 무슨 소리 하는건지 도통 모르겠단말야.’ 처럼.

그런데 좀 그 영어 부분에서 이상한 번역(?)이 있었는데. 이건 일본어판 번역자막도 좀 이상했다는 듯. 중반부에 쿠사나기가 영어로 [Enough is enough!] 를 외친다. 그 장면에서 한국어 자막으로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정말 못봐주겠네]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일본판에선[かわいそうなんかじゃない!] 로 번역이 되어있다고 한다. 한국어 자막도 일판 자막을 따른게 맞다면 [불쌍한게 아니야!] 정도였을것 같은데… 내 기억을 탓할 뿐.

어쨌건간에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유이치의 마지막 대사이다. 마지막 비행에서 티쳐를 발견하고 모두 돌아가는데 유이치는 혼자 빠져나오면서 [이건 내 싸움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지는 대사의 자막은 [티쳐를 격추하겠다!] 라고 했는데 실제로 들리는 대사는 [I kill my father] 였다.
혹자는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현’ 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시이 감독은 이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것이 젊은이의 역할 아닐까?’ 라고.

설령, 영원히 살아간다고 해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나뭇잎의 소리나 바람의 내음, 곁에 있는 누군가의 온기. 미묘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바라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소리 높여 외치는 공허한 정의나 틀에 박힌 격려 따위가 아닌 조용하지만 확실한 진실된 희망을 전하고 싶다.
-오시이 감독의 말이다.

by tanato | 2008/10/10 14:53 | 애니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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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ineo at 2008/10/10 15:17
1. 실제로 제가 지적한 부분은 사운드가 아니라 '화면'이었습니다.(...에바 극장판을 들먹인 이유가 있죠)

2. 스탭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애니는 3개 국어(...)용입니다. 일본어, 영어, 그리고 '폴란드어'이죠.(...존재감이 좀 희미하지만 분명히 폴란드어로 말하는 외부인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이 애니가 어른과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바로 '티쳐'이죠. 여담입니다만 자막때도 그렇고 OST의 트랙명도 그렇고 이 애니에서의 티쳐 스펠링은 Teacher입니다. 우리가 아는 '선생님'의 의미를 가진 단어 바로 그것이죠. 개인적으로 이 애니에 티쳐란 '존재'가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Commented by tanato at 2008/10/10 15:28
1. 화면면에서는 저는 차이점을 잘 못느꼈습니다.

2. 제 기억으론 폴란드어는 딱 한마디(..) 나왔습니다.(그게 폴란드어였는지는 잘 몰랐지만) 카페에서 쿠사나기가 화장실에 잠깐 갔었을 때. 한 어른이 잠깐 끼어들며(?) 했던 한마디가 폴란드어였고, 다른건 다 영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3. 확실히 그쪽으로 이야기를 파고들 때는 티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파악되지 않을까 싶네요.
Commented by Vrake at 2008/10/11 23:55
.... 전투중의 대사가 영어인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전부 항공용어가 미국쪽에서 차용해와서
그걸 그대로 현실에서 가져온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흠.
Commented by 세계의적 at 2008/10/13 13:47
'かわいそうなんかじゃない!'는 원작 소설의 대사 입니다.
번역자가 원작을 읽지도 않고 번역을 했나보군요.
Commented by tanato at 2008/10/14 01:56
enou... 이부분의 대사의 한국어 자막은 잘 기억이 안납니다(...)
그리고 그 대사는 영어대사 이후에 일본어로 또 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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